월요일, 12월 2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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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유혹하는 ‘셰헤라자데’가 되고 싶다.

'천일야화', 천 하루 동안 이어진 스토리

매일 처녀와 하룻밤을 보낸 후, 잠자리를 같이한 여자를 다음날 아침이기에 죽여버리는 권력자가 있다면, 

게다가 오늘 그 권력자와 하룻밤을 보내야 하는 처녀가 다름 아닌 당신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오랜 옛날 페르시아를 통치하던 국왕 ‘샤리아르’가 있었다. 그는 사랑하는 왕비가 흑인 노예와 부정을 저지르는 장면을 목격한다. 

분노한 왕은 당장 두 남녀의 처형을 지시했지만, 알몸으로 뒤엉켜 있는 왕비와 흑인 노예의 모습은 왕의 망막에 각인된 채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여성에 대한 강한 혐오감은 시간이 더할수록 의심, 배신, 복수심을 더 해 감정의 구렁텅이 속으로 깊이 빠져든다.

보통 트라우마로 어그러진 마음은 개인의 불행으로 끝나기 일쑤지만, 무엇이든 맘대로 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페르시아의 국왕에게는 경우가 다르다.

매일 밤 처녀와 하룻밤을 보낸 후 날이 밝으면 여자를 처형시켰다. 

이런 비극이 3년 동안 이어지자 나라의 처녀는 씨가 마를 지경이었고, 좋았던 민심조차 흉흉해졌다.

심지어 온 백성이 알라에게 왕을 죽여 달라고 저주할 지경이 되었다.



이때 재상이 딸인 ‘셰헤라자데’가 왕의 침실에 들어가겠다고 자진한다. 누구보다 현명하고 지혜로워 더욱 재상의 사랑을 받아왔던 딸이었다.

재상은 차마 자기 손으로 죽음의 구렁텅이로 내모는 일은 할 수 없다며 극구 반대한다. 

하지만 그녀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고 자포자기가 되어 마지못해 허락한다.

기괴한 짓을 벌이는 3년 동안, 왕국의 천여 명이 넘는 미녀들과 잠자리를 함께한 왕을, 아무리 ‘셰헤라자데’라도 성적으로 유혹할 수 있었을까? 

그녀보다 훨씬 예쁘고 섹시한 여자들도 다음 날 아침이면 모두 죽어 나갔다. 

설령 유혹으로 하룻밤의 시간을 벌었다고 해도 과연 그 효과는 며칠이나 지속될 수 있을까?

하지만 지혜로운 그녀는 가망이 없는 성적 유혹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승부수를 내 던진다. 

그것은 바로 ‘To be continued’ . 다음 회에 계속.

왕의 침실에 든 첫날,

‘셰에라자드’는 동생 ‘두냐자드’를 데려와 같이 왕과 함께 잠자리를 가진 후, 그녀와 눈을 맞춘 동생이 왕의 기분을 살피며 말하게 한다.

“언니 잠들기 전에 얘기 한 토막 해 주세요”

이렇게 그녀의 스토리텔링의 기나긴 여정이 시작된다.

매일 밤 셰에라자드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국왕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다음날까지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밀당의 고수였던 모양이다.


매번 새벽녘이 되면 이야기는 최고조에 이르러 다음 장면을 기대하게 했고, 열심히 이야기하다가도 아침이 되면 이야기를 뚝 끊어 버리고 시치미를 뗐다.

어쩌다 이야기가 새벽녘에 끝나 버린 경우에는, ‘이 이야기는 재미있지만 다른 이야기는 더욱 재미있답니다’라고 티저 신공까지 발휘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 국왕은 그녀를 살려두어야만 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To be continued’,  be continued’.

이야기가 계속되어 갈수록 소재는 고갈되어가고, 왕의 흥미도 까다로워질 것이다.


말초적 자극과 재미만 있는 이야기로 왕을 유혹할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마약처럼 더 센 자극을 요구하게 되어

결국에는 그 막장으로 치달아 흥미를 잃게 될 것이다.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어설프게 감동과 교훈을 넣었다간, 자칫 다음 날 아침을 기약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일반 사람들도 귀신같이 알고 있다. 재미와 흥미. 그리고 감동과 교훈 사이를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아가야 롱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 낼 입은 가지지 못했지만, 균형을 잃은 이야기를 선별해 골라 들을 귀는 가지고 있다. 

어려서부터 왕이 될 교육을 받아온 샤리아르 국왕은 더욱더 어설픈 청자(聽者)가 아니었다. 

온갖 고급 취향에 길들었고, 가슴속 상처로 인한 트라우마로 뒤틀려 있기까지 하다.

스토리텔링을 이어가던 셰헤라자데가 조금씩 밝아오는 창밖을 볼 때마다. 얼마나 가슴을 두근두근 떨어야 했을까?

신밧드의 모험, 알라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등 총 280여 편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녀는 새로운 이야기로 끊임없이 왕의 기대를 채워주었고,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예상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놀랄 거리를 계속 제공하면서 왕의 궁금증을 유발했다.


1,000 일하고도 하루가 지나자, 마침내 왕은 그녀의 목숨을 살려 주기로 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여자를 증오하는 자신의 뒤틀린 트라우마를 되돌아보게 되었고,  자신이 변태적 기행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목숨을 걸고 스토리로 왕을 유혹하던 ‘셰헤라자데’는 결국 왕과 결혼해 페르시아 왕국의 왕비가 되었다.

‘ZEROI, 나는 없다’ 에 올릴 첫 글을 무엇으로 올릴까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천일야화의 ‘셰헤라자데’였다.  


앞으로 펼쳐질 이곳의 짧은 글을 읽어가면서, 

삶의 무게에 지쳐 의미조차 찾을 수 없는 시지프스의 형벌 같은 하루하루에, 

때론, 권태와 지루함에 어떻게 해야 할지 요령부득인 당신에게, 

아침마다 오늘 하루 다시 한번 살아볼까 하고 결심을 가다듬게 하는 유혹이 되고 싶다. 

페르시아의 샤리아를 왕처럼, 자신도 모르게 내면의 상처와 뒤틀림을 치유하고 풀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 또한 날이 밝으면 당신의 한마디에 목숨을 잃을지 모를 두려움에 떨면서, 

당신을 유혹하는 ‘셰헤라자데’가 되고 싶다. ‘To be continued’,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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